음향기기/헤드폰

포칼 베티스MG - 이게 최선이었을까

듣고 보고 먹은 기록 2025. 12. 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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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는 상당히 많은 오디오 전문회사의 블루투스 이어폰, 헤드폰이 출시되었습니다. 얼마 전 후기를 올렸던 B&W Px8 S2, 캠브리지오디오 P100SE도 있었고, 아직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젠하이저의 HDB630도 있었습니다. 40-70만원대의 제품군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P100SE와 HDB630은 그래도 노이즈캔슬링 3대장으로 불리는 제품들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좋은 음질을 들려 주는 제품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상급기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는 B&W의 Px8 S2보다 조금 일찍 프랑스의 오디오 전문 업체인 포칼에서 Bathys의 후속작인 Bathys MG를 출시했었습니다. 100만원 언저리에서 지난 3년 동안 격하게 경쟁했던 포칼과 B&W가 그 후속기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어 경쟁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 앞에 '100만원 언저리'라고 설명을 했지만 799달러에 출시됐던 베티스 후속작인 베티스MG의 해외 출시가격이 1299달러, 국내 출시가격이 202만원(물론 이렇게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이라니요? 물론 B&W의 Px8 S2도 699달러였던 전작 대비 다소 오른 799달러에 출시가 되긴 했지만 500달러 인상은 너무 과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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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품의 포장이 에어캡에 포장이 된 건 특이합니다. 포장의 형태는 기존 베티스에서 이미 경험한 바라서 이상하진 않지만 주로 사각형 종이상자에 캐링케이스가 들어 있는 것에 비해 분명 낯선 디자인입니다. 가격이 상당히 많이 올랐음에도 패키지 디자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500불의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캐링케이스를 열면 헤드폰과 케이블이 들어 있습니다. 케이블은 USB C, 3.5mm 두 종류가 들어 있습니다. 케이블 색상이 제품의 구릿빛과 매치가 되는 것은 좋지만 케이블을 고정시켜 주는 덮개도 없는 건 200만원짜리 헤드폰에서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2-30만원짜리 헤드폰에서도 케이블 칸에 덮개를 만들어 주는데 말입니다. 500불의 가치는 어디로 갔을까요.

 

케링 케이스 비교

포칼 베티스MG의 캐링 케이스는 Px8 S2의 것보다 하단 부분이 더 넓고, 상단은 좁습니다. 포칼의 제품은 디자인도 상당히 마초적이고 다소 투박한 느낌을 주는데 그 디자인은 캐링 케이스에서도 이어집니다. Px8 S2의 캐링 케이스 지퍼의 위아래 이가 상당히 작고 겉에서 보이지 않게 처리된 것에 비해 베티스MG 캐링 케이스 지퍼는 이도 진격의 거인급인 데다가 겉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차이일까요?

 

제품 디자인

베티스MG의 디자인은 기존 베티스와 거의 같습니다. 회색, 모래색, 검정이었던 베티스와 달리 구릿빛 색상을 가진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후속작을 내면서 디자인을 바꾸고, 이어컵의 높이를 현저히 낮춘 B&W와는 달리 포칼의 디자이너는 이번에 놀고 먹었군요. 그냥 라카칠만 했나 봅니다. 자,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나의 500불은 어디로 간 걸까요.

 

제품 디자인2

제품 여기저기를 뜯어 봐도 기존 베티스에 비해 인체공학적으로 더 나아졌다거나, 추가되었다거나 하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동양인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짧은 헤드밴드의 장력은 여전히 삼장법사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손오공의 심정을 느끼게 해 줍니다. 다행히 저는 머리가 크진 않아서 모자를 쓰고도 착용하는 데까지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다른 기기처럼 오래 사용할 수 있을 장력은 절대 아닙니다. 역시 색깔 외에는 전혀 개선점이 없습니다. 500불은 포칼의 재무팀을 참 행복하게 해 주겠군요.

 

앱에는 베티스 MG가 표기됩니다. 제품 이미지도 정확하게 구분되어 뜨고요. 이건 돈 안 드는 거니 당연히 해 줬을 겁니다. 베티스 MG라고 해서 앱에 별다른 기능이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베티스가 가진 기능을 그대로 100% 가지고 있습니다. 포칼 재무팀의 웃음소리가 바다 건너

제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소리

헤드폰의 디자인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못 생겼어도 소리만 좋다면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리를 내기 위해선 이런 디자인이 필요했던 거라고!" 라며 셀프 가스라이팅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베티스와 베티스MG, 그리고 경쟁제품인 Px8과 Px8 S2의 소리를 비교해 가면서 청음을 해 봤습니다.

그 결과 냉정하게 얘기하면, 나의 500불은 포칼의 재무제표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칼 베티스의 장점은 무선에서 찾아 보기 힘든 수준의 볼룸 확보, 다이나믹, 전대역에 걸친 화려하고 강한 타격감입니다. 물론 해상력 자체도 좋긴 하지만 베티스의 장점은 해상력 따위가 아닙니다. 극저역은 다소 아쉽지만 그 이상부터 초고역까지 정말 불꽃놀이를 소리로 구현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는 정도로 화려한 소리가 베티스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입니다.

 

그러나 베티스MG는 해상력은 더 좋아졌지만 다이나믹이 현저히 적어졌고, 타격감도 약해졌습니다. 소리의 부드러움이 더해져서 귀는 편안해졌지만 베티스가 가진, 베티스에게 기대할 소리는 아니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베티스와 완전히 다른 계열의 소리이므로 그보다 더 좋은 소리냐를 물어야겠죠. 제가 느낀 바로는 베티스와 베티스MG는 그냥 다른 소리입니다. 하지만 더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더 좋지 않게 느꼈습니다. 왜냐면 그 정도 소리는 이미 Px8 S2로 충분히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티스는 클래식에 강점이 있던 Px8에 비해 전천후라고 생각합니다. 팝에서부터 클래식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다 소화할 수 있는 기기입니다. 베티스와 Px8을 장르별로 비교하면 클래식과 재즈, 뉴에이지, 느린 힙합 계열에서는 Px8이 더 좋은 소리를 들려 줍니다만 팝, 락, 메탈, EDM, 빠른 힙합, 케이팝 등에서는 베티스가 더 좋습니다.

Px8 S2의 소리가 업그레이드 되면서 단점이었던 저역 응답이 비교적 많이 개선되면서 대부분의 장르에서 베티스보다 좋은 소리를 들려 주게 된 반면, 베티스MG는 오히려 몇몇 장르에서는 베티스보다도 안 좋은 느낌을 주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Px8보다 안 좋게 들리던 클래식, 재즈 등에서는 부드럽게 바뀐 베티스MG의 소리가 좋게 들리지만, 원래 강점이 있던 락, 메탈, EDM 장르에서는 베티스보다 안 좋게 들렸습니다.

그렇다면 소비자로서는 현재 60만원대에 판매하고 있는 베티스와 그 두 배보다 비싼 가격에 팔고 있는 베티스MG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저는 약간의 해상력을 포기하더라도 베티스가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티스MG가 장점을 가지는 클래식, 재즈 장르를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150만원을 주고 베티스MG를 사느니 그보다 더 저렴한 Px8 S2를 사고 AptX Lossless를 지원하는 블루투스 동글을 하나 더 구입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돈이 남습니다.

 

총평

베티스MG는 분명 좋은 소리를 들려 주는 헤드폰입니다. 하지만 150만원(출시가 200만원)의 가치를 제공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존에 베티스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희석됐고, 단점은 개선이 되긴 했으나 그게 두 배의 가격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닙니다.

한껏 기대를 했던 베티스MG이지만 저에겐 큰 실망만 주었습니다. 색깔 외에는 전혀 바뀌지 않은 디자인과 지원 코덱, 마그네슘 드라이버 하나 교체한 것이 베티스보다 2배 이상의 가치를 갖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아니라는 결론을 비교적 빠르게 내렸습니다. 물론 베티스MG의 부드러워지고 섬세해진 소리에 만족할 사람도 많겠지만 기존 베티스의 '후속기'로서는 딱히 그 돈 주고 구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지간히(노캔3대장은 어지간하지도 않습니다) 좋은 소리를 듣고 싶으시면 60만원대의 베티스와 AptX Adaptive 동글을 구입하고,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으시면 90만원대의 Px8 S2와 AptX Lossless 동글을 구입하는 게 150만원대의 베티스MG보다 훨씬 만족스러울 겁니다. 베티스MG는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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