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젠하이저 헤드폰을 좋아합니다 과거 유선 기기로 음악을 들을 때부터 젠하이저는 저에게 레퍼런스 사운드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 줄 만큼 정말 좋은 소리를 들려 주었습니다. 다른 기기들에게선 들을 수 없던 해상력과 공간감에 더해 딱 독일스런 사운드를 들려 준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깊이 각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선으로 넘어 오면서는 사운드 튜닝을 음악 감상용에 맞게 한 탓인지 저음이 매우 강하고 전체적인 소리를 무겁게 가져오는 제품을 주로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멘텀4 헤드폰과 MTW3 이어폰을 끝으로 무선 기기의 젠하이저 제품을 더 이상 구입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MTW3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고, 오늘은 헤드폰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모멘텀4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검은색, 흰색, 데님까지 총 3개의 모멘텀4를 시기를 달리 해서 가지고 있었고, 아마 무선 기기 중에서는 가장 오랜 시간 들고 있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메인 기기로, 그 뒤로도 한참을 서브용 기기로 가지고 있다가 여자친구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 주기 위해서 모멘텀4를 장시간 빌려 줄 만큼 그 특유의 저음을 좋아했습니다.
젠하이저의 새로운 기기 HDB630이 출시가 되었지만 HDB630을 들이지 않고 B&W Px8 S2와 캠브리지오디오 P100SE를 새로이 들인 건 30만원대에 판매되던 모멘텀4보다 무려 2배 이상 비싸진 가격 때문이었습니다. '후속작'을 이전 기기와 전혀 다른 가격대로 출시하는 것에 대한 반감 같은 게 있는 데다가 거금을 들여 구입한 포칼 베티스MG가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더더욱 구입할 명분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 들어는 봐야겠다 싶은 생각에 청음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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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상자는 전형적인 젠하이저입니다. 늘 그렇듯이 파란색 테두리에 제품 이미지가 떠억하니 있지요. 상자를 개봉하면 얇은 습자지에 둘러싸인 캐링 케이스가 있습니다. 캐링 케이스는 꽤 튼튼한 직물 재질로 만들어져서 제품을 가지고 다니는 목적으로 알맞아 보입니다. 색상은 검은색이고, 헤드폰 디자인과 매우 잘 어울립니다.
제품 외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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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링 케이스를 열면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띠고 있는 HDB630이 보입니다. 힌지 부분은 실버를 가장한 회색으로 되어 있는데 헤드폰의 디자인은 전형적인 젠하이저입니다. 모멘텀4에서 세세한 수정만 한 것 같습니다. 모멘텀4 디자인도 못 생긴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디자인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젠하이저 HDB630은 별도로 판매되는 BTD700 블루투스 동글을 번들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출시 때 가장 불만족스럽게 생각했던 부분이 BTD700의 번들 제공이었습니다. 헤드폰의 음질을 더 좋게 듣게 하겠다는 의미는 알겠지만 그렇게 들을 사람은 이미 BTD700을 구입했었거나 Creative나 Questyle에서 만든 다른 동글을 사용하고 있을 텐데 가뜩이나 기존 제품에 비해 2배나 가격이 올랐는데 가격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품 외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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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원이 넘는 헤드폰의 재질이 인조가죽이 일부 가미된 플라스틱 덩어리라는 것 역시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헤드밴드에 있는 인조가죽은 교체가 가능한 이어컵과 달리 겉보기는 좋아 보여도 시간이 지나 김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교체도 안 되고 매우 난감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멘텀4의 패브릭 마감이 장시간 사용시에는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컵의 두께는 상당히 두꺼운 편입니다. 모멘텀4보다도 더 두꺼워져서 정면에서 보면 다오핏이 심한 편입니다. 하지만 헤드폰의 헤어밴드는 머리에 상당히 밀착되는 편이어서 전체적인 실루엣이 나쁘진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귀를 덮은 패드가 튀어 나오는 다오핏보다 헤어밴드가 머리에서 멀어져서 빈 공간이 많이 보이는 디자인을 더 안 좋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습니다. 구입하실 분들은 꼭 다오핏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회색 힌지 부분은 디자인적으로 일종의 포인트라고 색칠을 한 것 같은데 가까이 보니 한숨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게 70만원짜리 헤드폰의 질감이라니.... 독일식 감성이라면 할 말 없지만 70만원의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헤드폰이란 음질만 좋으면 되겠지요.
드라이버가 들어 있는 공간은 모멘텀4와 달리 매우 튼실한 천으로 마감을 했습니다. 유닛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거나 울퉁불퉁하게 보이지 않는 깔끔한 디자인입니다.

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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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하이저의 앱은 기능이 다양한 편입니다. 대부분 음향기기 업체 무선 기기 앱이 매우 단순한 기능을 제공하면서 있으나 마나 한 수준에 그치는데 젠하이저는 정말 많은 기능을 앱에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무선 기기를 오래 만들어 온(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벌써 5세대 무선 헤드폰임) 짬바가 발휘되는 부분입니다.
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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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의 기능만 놓고 보면 거의 소니 만큼이나 설정할 것도 많고, 더 세세하기까지 합니다. 연결은 기본 스마트폰, BTD700, USB C, 3.5mm 유선 연결이 있습니다. 물론 BTD700이 아니라 QCC Pro를 연결해도 동글 연결은 이상없이 잘 됩니다.
다만 앱 상에서 AptX Adaptive로 연결을 해도 24/96이 아닌 24/48로만 동작하는 걸로 나옵니다. 이는 QCC Pro 동글을 연결해도 앱에서는 동일하게 24/48로만 전송된다고 표기되는 것은 버그가 아니라 아예 기기가 그렇게 동작하는 것 같습니다.
블루투스 무선 헤드폰으로서는 최초로 크로스피드를 지원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크로스피드는 일종의 스피커와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한 기능입니다. 좌우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동작하는 이어폰과 헤드폰은 처음 들으면 다소 인위적이기까지 할 만큼 왼쪽과 오른쪽이 극단적으로 소리가 납니다. 하지만 스피커는 오른쪽 스피커에서만 소리가 난다고 해서 우리 왼쪽 귀에는 소리가 안 들리지 않습니다. 다소 멀게는 들리지만 그래도 좌우 소리가 적당히 섞여서 자연스런 소리를 들려 주게 됩니다.
HDB630은 소프트웨어적으로 스피커를 에뮬레이션 하는 거겠지만 효과가 그리 극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냥 소리가 약간 섞인다는 느낌적인 느낌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통해 스피커 사운드처럼 들린다거나 공간감이 더 살아난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소리
처음 듣자마자 느낀 점은 이 헤드폰은 에이징이 필요 없이 좋은 소리를 들려 주는 구나 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느낀 건 과거 유선 기기로 들었던 젠하이저 헤드폰의 사운드를 상당 부분 반영했네 였습니다.
모멘텀4의 사운드 특성이 극저역이 매우 풍성하게 나와서 중역과 고역을 푸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을 주는, 해상력보다는 풍성함과 편안함에 중점을 두었다면 HDB630은 특유의 극저역을 상당히 억제하고, 중저역 부분의 응답성을 빠르게 하고 댐핑력을 강조했으며 중역대와 고역대의 해상력과 구분감에 중점을 둔 느낌입니다. 해상력이 높지만 그렇다고 고역대가 부담스럽거나 인위적으로 강조하는 느낌은 아니고, 전대역에 걸쳐 편안한 소리를 들려 줍니다. 이 정도의 해상력을 가진 헤드폰이 치찰음 영역대가 이렇게도 편안하게 들린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젠하이저 앱에서 기본 블루투스, 동글(AptX Adaptive), USB, 아날로그 연결을 각각 별도로 메뉴를 구성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AC 코덱에서 AptX Adaptive 코덱으로 옮겨 왔을 때 가장 큰 소리의 변화를 느낀 헤드폰이고, 동글 연결에서 USB C 연결로 바꿨을 때의 소리 변화가 가장 큰 헤드폰 역시 HDB630이었습니다. 단순히 고역대가 더 잘들린다의 느낌이 아니라 고역대의 해상력과 공간감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 정도의 차이라면 이건 그냥 유선 헤드폰에 블루투스를 얹어 준 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USB 연결 시에는 24/96으로 동작합니다.
USB 연결했을 때의 소리가 너무 맑고 깨끗한 데다가 응답성도 좋아지고, 전반적으로 힘이 더해지는 느낌이라 이 제품은 USB C 연결을 메인으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소리의 단점

HDB630 소리의 단점은 AptX Lossless를 지원하지 않는다로 시작하겠습니다. 블루투스 스펙을 보면 24/96KHz까지 지원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4/48로만 동작이 되며, AptX Lossless 코덱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분명 16/44로 재생을 하고 있고, AptX Lossless 동글을 연결해서 음악을 전송하고 있음에도 그대로 24/48로 동작합니다. BTD700과 QCC Pro에서 같은 상황인 걸 보면 로스리스는 지원되지 않는 게 맞는 거겠죠. 고음질 기기를 표방함에도 로스리스를 지원하지 않는 건 아쉽습니다.
코덱 지원과는 별개로 소리 자체는 맑고, 해상력 좋은 소리를 들려 주지만 그 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리진 않습니다. 분명 좋은 소리이긴 한데 무미건조하다는 느낌만을 주는 소리입니다. 좋은데 좋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독일 사람을 소리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이려나 싶습니다.
총평
고급 음향기기 업체들은 단순히 해상력 높고, 공간감 넓은 그런 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기기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음질이 갖춰지면 본인들만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담아내곤 합니다. B&W, B&O, 드비알레, 포칼 같은 전문 음향기기 회사들이 그렇습니다. 몇 백, 몇 천만 원짜리 스피커 사운드를 몇 십만 원짜리 블루투스 이어폰, 헤드폰으로 100%를 담아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본인들 만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최대한 유사하게 담아내려고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젠하이저 HDB630은 그런 시그니처 사운드를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그게 너무 아쉽습니다. 제가 모멘텀4를 좋아했던 건 해상력은 다소 떨어져도, 보컬이 다소 뒤로 밀리고, 공간감은 좁아도 귀가 간지러울 만큼 격하게 울리는 극저역 사운드에 매력을 느껴서였습니다. 객관적인 지표로 따지면 HDB630이 모멘텀4보다 압도적으로 좋겠지만, 저에겐 오히려 모멘텀4가 더 매력적인 소리로 머리에 남네요.
현재 저는 메인으로 Px8 S2를 쓰고 있습니다. Px8 S2와 HDB630을 1:1로 비교하면 귀의 편안함은 HDB630이 한수 위이긴 하지만 저역의 풍성함, 보컬의 선명도와 해상력, 공간감에서는 Px8 S2가 다소간 나은 소리를 들려 준다고 생각합니다.(모니터링용이 아닌 음악 감상용으로서의 평가입니다) 다만 Px8 S2가 치찰음 영역대가 다소 자극적으로 들릴 수는 있어서 그건 개인마다의 차이가 있을 겁니다.
높아진 가격 만큼 뛰어난 해상력, 빠른 응답과 타격감이 돋보이는 저역, 선명한 보컬, 자극성이 전혀 없이 찬란한 고역, 그리고 저역부터 고역까지의 조화로움에 있어서는 정말 좋은 소리입니다. 그래서 모니터링 목적을 메인으로, 휴대용 음악감상을 서브 목적으로 사용하실 분들에게는 좋겠지만 음악 감상 만을 목적으로 하는 분들에게는 70만 원의 가격으로는 다른 선택지가 꽤 많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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